무제

#1.
전 정말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무섭습니다. 그 머리와, 마음과 입이 어쩜 그렇게까지 교활할 수 있는지 새삼 놀라게 돼요. 살아남는다는 게 뭐 그리 중요해서, 아니 굳이 자기에게 득될 것도 없는데 어찌 그리 남을 모함하고 모든 걸 남 탓으로 돌리며 자기는 전부 옳은 척, 약한 척, 착한 척, 피해자인 척 하는 걸까요. 참 대단한 것 같아요. 전 좋고 싫은 감정을 숨기질 못해서 거짓말을 해도 좀 어설픈 편이거든요. 간이 작아 스스로 움츠러드는 것도 있지만... 그렇게 거짓말을 하고, 표리부동하게 행동하면서도 낯색 하나 안 변하는 거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안 듭니다.

#2.
당한 게 억울해서 '사실은 니가 천사가 아니란 걸 알고 있다, 니가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지 알고 있다' 엿 한 번 먹이고 나가려다 이도저도 다 귀찮아 관두려 했거든요. 그런데 오늘 먼저 시비를 걸길래 대거리를 해줬습니다. 천사인 양 온갖 착한 척을 하면서 말을 거는데 참을 수가 없더군요. 뒤에서 무슨 짓 하고 다니는지 다 아는데... 토가 나올 지경이었어요. 더욱이 또 모든 건 우리팀 탓이더군요. 네네, 그 와방 부풀린 경력 10년의 능력이 겨우 그 정도지요. 그따위로 일하면서 어따 대고 기본이니 경력이니 운운합니까. 이 회사처럼 디자이너가 편한 데가 있을까요. 디자이너가 할 일도 기자가 하는데, 짧은 경력이지만 이런 데 첨 봅니다. 이제 얼마나 더 절 씹고 다닐지 뻔합니다만 그러거나 말거나, 유치해서 상대도 하기 싫습니다 이제.

#3.
머지 않아 보여요. 광고팀 둘, 기자 둘 이달 부로 다 빠집니다. 정해진 수순이지요. 상식을 지닌 인간이 여기서 버티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에요. 방법은 단 하나, 같이 또라이가 되면 가능하겠죠. 책도, 곧 접힌다는 소문이 내외부로 파다하네요. 이젠 '그러거나 말거나'의 심경입니다.

#4.
오늘 날씨가 너무 좋아서, 가을냄새가 너무 진하게 나서 기분이 너무 좋았는데 저년 때문에 삭 잡쳤습니다. 그래도, 날씨 덕분에 기분이 금세 나아지긴 하네요. 고개를 살짝 돌려 창 밖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져요. 정말 방방 뛰고 싶게, 혼자 걷다 미친년처럼 실실 웃을 정도로 기분이 좋네요. 여름 내도록 기다린 건 바로 이 냄새였어요.


by 뇌를씻어내자 | 2008/08/19 11:20 | 쭈 다이어리 | 트랙백 | 덧글(7)

곧 백수

나라고 쉽게 내린 결정은 아니다. 이직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이직을 결심한다는 건 그만큼 경력과 성실의 척도에 있어 마이너스 요인을 떠안고 간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. 하지만 모두 감수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면접 때 그에 관한 질문을 받게 되면 적잖이 난감해지곤 한다. 이직을 결심하게 된 복잡한 배경과 충분히 불리하리란 걸 알면서도 그러한 결심을 할 수밖에 없었던 심경에 대해 어찌 간단한 말로 설명을 할 수 있을까. 

나는 꽤 감정적인 편이지만 또 한 편으로는 굉장히 현실적인 편이다. 화르륵 불타올라 뭔가를 결심했다가도, 이내 현실적인 상황들에 일단은 마음을 가라앉히기 일쑤다. 이번처럼, 이직을 결심하는 것과 같은 상황에서 말이다. 

여기까지, 꽤 잘 버텨왔다고 스스로는 생각한다. 정말 힘든 고비를 넘겼었고, 그렇게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와서 포기한다는 건 어떤 면에서는 자존심이 상하고, 어떤 면에서는 아쉽다. 겨우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인간이었나, 결국은 니가 못 버티는 거잖아, 라는 자책, 그리고 아직 마음껏 해보지도 못했는데, 더 해보고 싶은데, 더 잘해내는 거 스스로에게 보여주고 싶은데 멈춰야 한다는 안타까움이 발목을 잡은 게 사실이다. 하지만 그보다 더 크게 나를 멈추게 한 것은 더 이상 그 어떤 비전도 기대할 수 없다는 참담함에 있다. 

사람에 힘이 든 거, 정말 살면서 겪어보지 못한 또라이들을 여기에서 만나게 된 거, 그거야 참을 수 있다. 내가 정말 못 견디겠는 건 나 스스로에게 보여주기조차 부끄러운 결과물을 만들어내야만 한다는, 그걸 바로잡을 힘이 내겐 없다는 현실 때문이다. 나는, 이제 스물 여덟도 반 이상을 넘긴 나는 결코 적은 나이가 아니다. 물론 많은 나이도 아니다. 문제는 그렇게 애매한 나이라는 것. 지금 무언가를 닦아놓지 않으면 내 서른은 정말 말도 못하게 부끄러워질 수 있다는 것, 바로 그거다.

난 서른이 되면 그럭저럭 안정이 되고, 뭔가 커리어의 측면에서도 이루어져 있을 거라 생각했다. 하지만 막상 서른이 되고, 그 시기를 지난 언니 오빠들은 '서른이 지나봐야 개뿔도 없다. 여전히 불안하고, 오히려 더 불안하다'고 말하더라. 이제 내가 그 나이에 다가가고 있다. 그리고, 그들이 했던 말이 결코 겸양의 말이 아니었음을 막연하게나마 알겠다. 

오늘의 사표는, 그래서 던지는 거다. 이렇게 머뭇거리면서 퇴보할 시간이 없어서, 이렇게 넋 놓고 있다간 정말 있던 감마저 다 잃어버릴 것 같아서, 나를 혹독하게 굴려도 뭔가 쥐어짜낼 건더기가 있는 사람과 회사에 가고 싶어서, 이렇게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가는 내 서른이 정말 짜쳐질 것 같아서. 

당장의 생활비 걱정은 접어두자. 편의점 알바를 해선들 굶어죽을까. 올 상반기 액땜, 정말 제대로 했으니 다 잘 될 거라고, 나 스스로를 다독인다. 


  

by 뇌를씻어내자 | 2008/08/18 12:59 | 쭈 다이어리 | 트랙백 | 덧글(5)

자근자근 밟아주기

기다리고 있어. 널 위한 이벤트를 준비 중이니까.
난 천사표가 아닌데 넌 날 너무 착하게, 만만하게 봤구나.
이 쇼는 결코 니가 아닌, 내 정신건강을 위한 것.




by 뇌를씻어내자 | 2008/08/13 22:29 | 쭈 다이어리 | 트랙백 | 덧글(3)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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